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민의 정부/평가 (문단 편집) ==== [[1997년]] 대선 당시 전두환, 노태우 사면 논란 ==== [[전두환]]과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1997년]] [[12월 22일]] [[김영삼]] [[대통령]]이 [[15대 대선]] 당선자인 [[김대중]] 당선자와 합의하여 국민 대화합을 명분으로 관련자 모두를 특별사면했다. 이에 관해 [[김대중]] 당선자가 먼저 건의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사면은 어디까지나 [[김영삼]] [[대통령]]에 의한 것이었고 [[제15대 대통령 선거]] 당시 [[이회창]], [[김대중]], [[이인제]] 세 명의 후보 모두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과 복권을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다. [[위키백과]]에 게시된 15대 대통령 선거 당시 대선후보들의 전두환, 노태우 사면 공약 대결 문단을 보면 >대선 후보들의 전두환 노태우 사면 공약 대결과 [[외국]] [[언론]]사들의 전두환 노태우 사면에 대한 평가 > >1997년 대선 후보들의 전두환 노태우 사면 공약 대결과 외국 언론들의 김대중당선자의 전두환 노태우 사면에 대한 평가,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이회창 이인제 3후보 모두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 복권을 공약으로 내세워 논란을 빚기도 했다. 1997년 8월 31일, 9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대통령 후보는 간담회에서 "김영삼 대통령 임기중에 전두환 노태우를 사면하여 동서화합의 길이 열리도록 하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는 이어 "그들(전두환 노태우)이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다고 우리도 똑같이 대응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다음날인 9월 1일 SBS 대통령 후보와 함께라는 프로그램에서 김대중 총재는 전두환 노태우에 대한 용서론을 강조했다.[16] 이렇게 김대중후보가 전두환 노태우 사면을 내세우자 경향신문은 "화해의 정치인'부각 영남 끌어 안기6共(공)세력들도 포용 색깔론 차단 효과까지 ‘용서’광주여론도 한몫 국민회의 김대중(金大中(김대중))총재가 정치권의「뜨거운 감자"라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17] 그리고 10월 23일, 새정치국민회의 박정수 부총재는 국회 본회의 연설에서 "김영삼대통령이 전두환 노태우를 사면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김대중후보가 당선되면 대대적인 사면이 단행될 것"이라고 밝혔다.[18] [19] 이날 김대중 후보를 대신해 대표 연설에 나선 새정치국민회의 박정수 부총재는 집권 정치 보복을 절대 하지 않겠다는 김대중후보의 약속을 거듭 강조하고 아무런 전제 조건을 달지 않은 채 전두환·노태우 前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촉구했다.[20] 그에 대응하여 9월 1일 신한국당 대선후보인 이회창은 보수세력의 연합과 국민적인 지지를 얻고 김대중 후보의 전두환 노태우 사면론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김영삼대통령에게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추석 전에 사면해 줘야 된다고 요구한다.[21] [22] [23]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이회창의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대통령 조기석방에 대해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돼야 된다"며 이회창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24] 당시 정치권이 경쟁적으로 앞다투어 전두환 노태우 사면을 공약으로 내세우자 사회 각계에서도 개탄의 분위기가 쏱아졌다.[25] 당시 김영삼대통령은 9월 12일, 당초 전두환 사면에 대해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며 이회창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으나 다시 말을 바꿔 대선 전에 사면을 할 것이라며 입장을 선회한다.[26] 이렇게 이회창이 전두환 사면을 공약으로 내세우자 감옥에 있는 전두환이 이회창에게 "고맙다"며 "우리 때문에 정치적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니냐" 화답할 만큼 매우 기뻐했던 것으로 밝혀졌다.[27][28] 그리고 이회창은 9월 24일, cbs와 경실련과의 간담회에서 전두환 노태우 사면에 대해 "전직 대통령이 구금상태에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대통합 차원에서 석방해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토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전두환 노태우 사면론에 적극적으로 찬성한다.[29] 이는 곧 경쟁자인 김대중의 전두환 노태우 사면론을 무력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12월 18일 대선에서 이회창은 김대중후보에게 39만표차로 떨어져 낙선하고, 전두환과 노태우는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날인 1997년 12월 20일,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와의 협의로 사면 복권되었다.[30] 이회창과 김대중이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 복권 공약을 내세운 것에 대해 이인제도 경쟁적으로 전두환과 노태우를 사면 복권한다는 공약을 내세웠다[31] [32] [33] 12월 21일, 김대중당선자가 김영삼대통령과 협의에 의해 전두환 노태우를 사면한 것에 대해 외국 언론들은 용기있는 결정이라며 평가했다. 뉴욕타임스지는 김대중 당선자가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에 동의한 것은 자신의 쓰라린 과거를 묻어둘 의사가 있음을 시시한 것이라고 평가했고 미국의 ABC방송은 김대중 당선자가 40년간에 걸친 고난의 정치역정을 용서로써 마무리 짓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ABC방송은 이어 김 당선자의 용서는 경제회생이라는 어려운 임무를 떠안게 된 새 지도자로서 정치적인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논평했다. 워싱턴포스트 신문은 김 당선자의 이번 조치가 국가 화합과 지역감정 해소, 그리고 경제위기 극복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34] 뉴욕타임스는 "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치적 화합책의 하나로 김대중(金大中(김대중))대통령당선자는 두 명의 전임 독재자들에 대한 사면에 동의했다. 김영삼대통령 측 대변인은 김대중당선자가 전두환 노태우 사면에 대해 동의했다고 밝혔으나 김대중 당선자측은 전두환 노태우 사면에 대해 우리가 그들(김영삼, 이회창 신한국당 대선후보, 전두환, 노태우)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 뿐"이라고 밝혀 사면에 대한 둘의 미묘한 신경전을 보도했다. > 위키백과, 15대 대통령선거, 대선후보들의 전두환 노태우 사면 공약 대결 문단 참고[* [[https://ko.wikipedia.org/wiki/%EB%8C%80%ED%95%9C%EB%AF%BC%EA%B5%AD_%EC%A0%9C15%EB%8C%80_%EB%8C%80%ED%86%B5%EB%A0%B9_%EC%84%A0%EA%B1%B0#cite_ref-12|위키백과 15대 대통령선거]]] 이 특별사면에 대해서는 당시 [[문민정부]] 및 [[이회창]], [[김대중]], [[이인제]] 세 명의 후보 모두 특별사면에 동의했고, 여야 또한 찬성의사를 밝힌 상태라 이미 기정사실화된 상태였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122100209107002&edi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7-12-21&officeId=00020&pageNo=7&printNo=23744&publishType=00010|전노 사면에 대한 청와대 정치권 반응 1997.12.21. 동아일보]]]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